대한송유관공사가 1990년대 초 경기도 고양군 강매리에 저유소를 건설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송유관공사 쪽은 뒤늦게 저유소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철회를 요구하자 이미 땅 매입이 거의 끝난 상태라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으며, 화재 위험은 전혀 없다며 공사를 강행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잔디에 떨어진 불씨 하나로 휘발유 440만리터가 담긴 탱크가 폭발해 피해 규모 43억원이라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7<한겨레>가 입수한 19912~3월치 <주간고양>의 보도 내용을 보면, 대한송유관공사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에 경인지사(고양저유소)를 건설할 당시 저유소 부지 매입이 거의 끝날 때까지 주민과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았다. 송유관공사 쪽은 대부분 부재지주 소유인 땅을 쉽게 매입한 뒤 측량 과정에서도 공장이 들어설 부지라며 주민들을 속였다.

 

뒤늦게 저유소 건설 계획을 알게 된 강매리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하의 송유관에서 기름이 새어나올 경우 농사는 물론 농토까지 사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식수로 쓰는 지하수가 오염될 가능성, 폭발사고 우려 등을 내세워 강하게 반대했다.

 

주민들은 19911월 청와대와 동력자원부, 대한송유관공사, 민주자유당 고양군지구당, 고양군수 등 5곳에 저유소 설치 철회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냈다. 같은 해 3월에는 주민 300여명이 지도읍사무소에서 저유소 설치 결사반대 농성을 벌이다 14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대한송유관공사쪽은 수도권지역 유류의 안정공급과 경인간 교통체증 완화 등을 이유로 들며 공사를 밀어붙였다. 당시 정부와 송유관공사 쪽은 이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개발이 되지 않는 것보다 공익을 위한 저유소 시설의 설치로 지역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유조차량 운행으로 증가되는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능곡~수서간 2차선 도로를 8차선 이상으로 확장하게 되면 지역개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특히 국가 필요사업이며 송유관이 철저한 안전설계에 의해 시공되고 사후관리로 각종 안전사고 방지시설을 갖추고 있다. 저유탱크의 지하 매설로 충격에 의한 파손이나 화재의 위험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주민 반대가 계속되자 봉래산을 사이에 두고 마을과 저유소가 차단돼 화재 위험도 없고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한 위치임을 거듭 강조했다.

 

고양저유소는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199212월 강매동에 들어섰고, 이후 행신지구 등 택지가 개발되면서 지척에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현재 서정초등학교가 900m, 강매역이 970m, 항공대가 1.3반경에 위치해있다. 뒤편 봉대산 중턱에는 서울문산고속도로 강매터널 공사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저유소 인근에 안전관리를 요하는 표지판도 제대로 부착돼 있지 않아 주민은 물론 인근 시설조차도 위험시설인 저유소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강매동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펼침막을 내걸고, 이번 화재로 집값이 떨어지고 지역 발전이 더욱 어렵게 됐다고 하소연하며 위험시설인 저유소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한한갑(71)씨는 주민들이 위험성이나 안전관리 등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건설을 밀어붙였다. 정부와 공사쪽이 지역발전과 취업기회 제공 등을 약속했지만 지역은 아직 낙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민은 늘 불안한 상태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선호승(60)씨는 직선거리 100~200m 사이에 100여가구 주민이 살고 있는데 산불이라도 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불안해서 누가 이곳에서 살려고 하겠나. 유야무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확실한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200012월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침에 따라 정부지분을 매각해 민영화됐다. 현재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지분 41%가진 최대주주이며 지에스칼텍스(28.62%), 에쓰오일(8.87%), 현대중공업(6.39%), 대한항공(3.10%), 한화토탈(2.26%)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고양 송유관 폭발사건 관련 공정안전보고서(PSM) 이행실태 점검내역자료를 보면, 고양 저유소는 2011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6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03, 시정명령 불이행 39, 공정안전 규정 위반 64건 등을 저질러 총 592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고양 저유소는 20147월 점검에서 저장탱크에 설치된 통기관에 화염방지기를 설치할 것(5개소)’ 등의 시정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영화되지 않았어야 할 대한송유관공사가 민영화된 것이 원천적인 문제의 출발이라며 공적으로 철저히 관리하거나 민영화했으면 안전 관리에 국가적 책임을 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장과 안전관리, 시설관리 책임자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기사 원문 보기

[한겨레]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건설 반대에 화재위험 없다공사 강행

Posted by 김문경9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