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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미세먼지 주의'에도 마스크 쓸 수 없는 노동자들

의정활동/언론보도

by jjeun 2018. 4. 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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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25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한 백화점 앞. 입점업체들이 의류, 식기, 이불 등 다양한 상품을 매대 위에 진열해 놓고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입점업체 직원들은 줄곧 밝은 표정으로 고객들을 맞이했다.

 

72000억 원이 투입되는 범정부 차원의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약 6개월. 직원들의 밝은 표정과 달리 하늘은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이날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는 2015년 관측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오전 10시에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그러나 입점업체 직원들 중 누구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이 같은 광경은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띈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돼도 거리 곳곳에서 식당 홍보전단을 돌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채광 좋은 카페들은 뿌연 하늘과 상관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손님을 받는다. 관광통역안내사들은 혹시라도 관광객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이 남을 것을 우려해 가급적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택시운전사들 또한 승객들에게 불쾌감을 조성할 수도 있어 마스크 착용을 피한다. 체력 소모가 많은 직종의 경우 마스크 착용으로 숨이 가빠져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역시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사업주, '미세먼지 경보' 시 노동자에 마스크 지급해야 한다지만

 

미세먼지에 장시간 노출되면 호흡기 질환과 피부염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는 지난 2013년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24조 제1항은 사업주가 건강장해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무를 담고 있다. 이 조항은 근로자가 '분진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명시해 놓았다.

 

분진작업 시 사업주의 보건조치 사항을 규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617조 제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분진작업을 하는 경우에 해당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적절한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하여 착용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의무조항이다. 이때 근로자 개인전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제2항에 뒤이어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분진'의 개념에 미세먼지가 포함되면서 사업주의 호흡용 보호구 지급 의무가 생겼다.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될 때 밖에서 일하는 옥외노동은 '분진작업'이 된다.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제605조 제1호는 분진에 황사, 미세먼지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규정하면서 그 다음 조항에 별표를 두고 어떤 작업이 분진작업인지를 정하고 있다. 이 별표에 따르면 미세먼지 '경보' 발령지역에서의 옥외작업은 분진작업으로 분류된다. 분진작업으로 분류될 경우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마스크와 같은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산안법은 이러한 규정의 실효성을 담보하고자 별도의 벌칙 조항도 뒀다. 법 제67조는 사업주가 분진작업을 할 때에 따르는 보건조치 의무를 규정한 법 제24조 제1항을 어겼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미세먼지 '주의보' 땐 마스크 지급 의무 없어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이 현실과 괴리되는 다른 이유는 규칙의 적용기준에 있다. 같은 규칙 제605조 제2호에 정의된 '분진작업'은 미세먼지 '주의보'인 경우를 포괄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미세먼지 수치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에 규정된 미세먼지 '경보' 발령 기준에 해당될 때, 분진작업이 된다는 의미다.

 

,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때에는 사업주가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루 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사상 최고 기록을 나타냈던 지난 325일에도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돼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는 발동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점도 눈에 띈다.

 

예컨대 고객 응대 업무가 많은 서비스 직종은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고객과의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소노동자 건설노동자 집배원 등 대표적인 옥외노동자들은 미세먼지에 장시간 노출될 수밖에 없어 산재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지만 업무 특성상 마스크 착용은 쉽지 않다.

 

박종태 노무법인 봄날 대표노무사는 "(산재 발생)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미세먼지 경보 단계에 작업하는 옥외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상 마스크 등 보호구 지급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나, 현실과는 잘 맞지 않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권고 수준의 가이드라인, 미세먼지 막을 수 있나

 

이에 고용부는 4월 중으로 미세먼지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에는 미세먼지 '주의보' 단계부터 호흡기 보호구 착용 및 옥외노동 최소화를 권고하는 내용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형식의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을 묻는 질문에 고용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다른 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 미세먼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나라가 전혀 없다""사례가 있다면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도 법적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될 때, 사업주에게 마스크 지급을 권고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어느 나라도 이걸(미세먼지 보호구 지급) 가지고 어떤 벌칙이 따르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해외 사례는 없지만 (미세먼지에 민감한) 국민 정서를 고려해 최소한 (미세먼지 주의보가 아닌) 경보 수준부터는 반드시 지급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비스 직종 등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부분들(서비스 직종 등을 위한 방안)은 추가 보완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그런 내용들은 외부 전문가 의견 수렴 과정에서 검토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도급관계에서는 적용 안 되는 마스크 지급 의무

 

현행 산업안전보건 규정의 또 다른 문제는 도급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도급인은 수급인 근로자에게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이 같은 보건조치 의무가 도급인에게 부여된다.

 

도급인의 보건조치 의무가 발생하는 산업재해 발생 위험 장소는 산안법 시행규칙 제30조 제4항에 명시돼 있다. 해당 규칙은 산재 발생 위험 장소를 22개 항목으로 나열해뒀다. 그러나 분진작업은 이 22개 항목 중에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도급인은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돼도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수급인 근로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고용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는 최근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하는 기류와 배치된다. 정부와 국회는 산안법 개정안을 통해 도급인의 책임을 강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검색 결과 20대 국회 들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은 총 15(철회 의안 제외).

 

특히 한정애 의원이 지난 2016년 발의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눈에 띈다. 이 법안은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규정한 산안법 제24조를 도급인의 산재 예방 조치 의무가 규정된 제29조 제1항에 포함시킨다. 이렇게 되면 도급인은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될 때, 수급인 근로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해야 할 보건조치 의무가 생긴다.

 

물론 한정애 의원안의 경우 산안법 제24조와 제29조의 처벌 규정이 서로 상충되는 문제가 있어 보다 섬세한 입법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핵심은 도급인의 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에 관한 입법적 논의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주, 옥외노동자 넘어 국가 차원의 공동 노력 필요

 

미세먼지가 앞으로도 계속 사회적 문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사업주와 노동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박종태 노무사의 설명이다. 박종태 노무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옥외노동자들은 미세먼지 유해성이나 미세먼지 경보 발생 여부 등을 현실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업주와 노동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법 규정 정비 등 제도적인 보완도 중요하지만, 미세먼지의 심각성과 예방 필요성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 등을 통해 일선 사업장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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