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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과의 조우(遭遇), 익숙한 것과의 이별(離別)

한정애입니다/한정애 단상

by 한정애 2012. 3.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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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7 재보선의 의미 -

지난 4월 13일 한국노총은 중앙정치위원회를 개최하여 4·27 재보선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을 정한바 있다. 한국노총은 노동법 재개정에 찬성하는 친노동자 정당 후보(야3당) 집중 지원 및 반노동자 정당 한나라당을 심판하기로 굳게 결의했다. 익숙했던 것을 버리고, 낮선 것을 선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여기에 굳이 '역사적'이라는 토를 다는 이유는 이제껏 한국노총이 한 목소리로 범야권 세력을 적극 지지한 사례가 전무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공교롭게도 그 날은 4.13 호헌지지라는 한국노총의 역사에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야당의 압승이라는 준엄한 국민의 의지를 확인시켜준 채 4.27 재보궐선거는 막을 내렸다. 역대 그 어느 재보선보다도 높은 투표 참여율을 기록했다는 사실 또한 뜨거운 국민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2011년 1월 25일부터 시작된 노총 현장의 목소리가 어떻게 4.27 보궐선거를 관통하였으며, 향후 어떤 정치적 함의를 담고 한국 노총의 역사로 남게 될 것인가. 재보선이 끝난 지금 우리는 지난 3개월간에 걸친 숨 가쁜 일정들을 뒤돌아보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만들어 낸 것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노총 차원에서 바라본 이번 선거는 대략 “이명박 정권에 대한 마지막 경고, 범야권 대선후보들의 각축전, 그리고 한국노총의 선택” 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그 성격과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명박 정권에 대한 마지막 경고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 4·27 재보선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였다는 사실이며, 이는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임기 말을 향해 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든, 차기를 노리며 절치부심하고 있는 야권의 입장에서든, 이번 재보선은 의석수 하나·도지사 한자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다.

사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은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6.2 지방선거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지방선거의 결과를 겸허히 받들고, 국정 전반에 대한 재점검을 통해 기조를 쇄신하고 소통과 대화로 임하였다면 이번 재보선은 다른 양상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결과와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지속한 청와대와, 이러한 정부의 일방독주를 막거나 견제하지 못하고 끌려만 다닌 집권여당의 합작품이 이번 재보선 결과라 할 수 있다.

최근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 1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80명(66%)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여 여소야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청와대 역시 물가와 전세난 등 민심이 좋아질 여건이 별로 없어 향후 정국이 여권에 더욱 불리하게 진행될 수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방선거 이후 위기감이 높아진 수도권․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청의 변화와 쇄신, 당청 분리, 새로운 당 지도부 선출 문제 등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결국,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권의 참패는 고스란히 청와대의 탓으로 귀결 될 것이며 대통령의 탈당 요구, 당청분리를 앞세운 당의 차별화 전략과 함께 정권의 레임덕 현상은 한층 가속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둘째, 범야권 대선후보들의 각축전

4.27 보선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이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였다. 차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대표적인 야권 대선후보인 이들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고 입지를 다져줄 중요한 한판 승부였다는 점에서 잠룡들의 미래 가치를 예견하는 시금석의 성격이 컸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의 경우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일컬어지는 분당을 출마와 당선을 통해 자당의 차기 대권후보로서의 입지를 굳혔으며, 동시에 대권후보 선호도 측면에서 지지부진한 자신의 지지율을 만회할 기회를 확실히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지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현 지지율을 최소한 자당의 지지율 정도까지는 끌어올려야만 향후 이루어질 민주당내 경선과정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대표의 경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범야권의 선거판을 만들어 낼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이번 재보선에서 원내 진출 실패로 그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사실은 파이를 키워야하는 야권․민주진영 전체로 보았을 때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추후 제기될 선거 패배 책임론과 친노 분열론, 민주당과의 통합론 등으로 시련의 계절을 맞이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는 하지만, 경기도지사 선거 이후 야권 단일후보의 연이은 실패라는 점을 놓고 볼 때, 김해을의 패배로부터 제1 야당 민주당 역시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당 후보가 되던 야권 단일 후보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도 부족한 판에, 민주당 후보가 아닌 타 당 후보로의 단일화가 거듭 실패하고 있는 현실은 자칫 '야권 단일화 무용론'을 불러 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리적으로 야3당(국민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당장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방법이 실현 가능하지도, 또 전략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향후 야3당의 先소통합 후 민주당과의 총선 후보 · 범야권 대권 후보 단일화 경쟁 구도를 그려 볼 수 있겠는데, 문제는 이러한 야권 연대 무용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셋째, 우리노총의 선택과 그 의미

지난 1월 25일 노총의 현장은 지난 3년간 반노동자·친기업 정책을 앞세워 노동자·서민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한 이명박정권 및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요구하며 새로운 집행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월24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4.27 보선에서의 반노동자정당을 심판키로 하였으며, 4월13일 열린 노총 중앙정치위원회에서는 4.27 재보궐선거에서 노조법 개정에 찬성하는 야당(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노조법 개악과 반노동 정책으로 정책연대 파기의 원인을 제공한 한나라당을 '반 노동자 정당' 으로 규정하여 '심판'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당직이나 당적을 가진 간부들은 재보선 기간 동안 일체의 개별적 정치행위 및 활동을 중단하고 노총의 정치방침에 의거한 단일한 정치활동을 전개키로 하였다.

4.27 재보선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이후 처음으로 맞닥뜨린 정치적 시험대이기도 하였다. 이는 향후 진행될 총선과 대선 이전에 한국노총이 “어떠한 기조로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천명” 하여 그 원칙을 통해 현장의 힘을 결집 시키느냐 하는 것으로, 노총이 지원한 후보의 당선여부 가능성과 관계없이 반노동자 정당 심판이라는 노총 정기대의원대회(‘11.2.24)의 기조를 일관되게 견지하는 것이었다. 현장과 함께 즉, 조합원과 함께 호흡하는 노총으로서의 재탄생을 보여주는 시발점으로서 4.27 재보선은 자리매김 되었다.

또한 노조법 재개정을 전면에 내세우고 현 정권 및 정부여당인 한나라당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하는 노동계가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전략과 전술로, 4.27 재보선에서 현 정권 심판을 이루어 낸 것은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임과 동시에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지형변화를 주도하는 주체적인 세력화의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준 것이며, 노총으로서는 정책연대 파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정치적 실험의 리트머스였다.

4.27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해 있던 것과의 이별을, 그리고 조금은 낯선 것과의 조우를 허락하였다. 한국노총의 역사상 이런 결정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새로운 선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도처에서 감지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지향해야하는 가치에 입각한 바른 선택, 정치적 지향점을 보여준 현명한 결단이었음을 역사는 말해 줄 것이라는 위안이 그나마 우리를 편안케 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노동자 서민의 삶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결단에 의해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동지들과 함께 어깨 걸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은 노동자와 서민이 살만한 세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말한다. 정치 투쟁이야말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도의 전략적 투쟁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할,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가치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고도의 전략이 대세에 편승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해 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때로는 실패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던 그 판단과 결정의 기준은 과연 당당했었는가?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낮선 것을 선택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바로 그 용기 있는 선택에 의해 항상 진일보 해 왔음을 직시하고 노동자 세상의 바른 길로 올곧게 달려가자.


- 한국노총 기관지 「한국노총」2011년 5월호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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